은아:) 2020. 2. 2. 00:12

 

 

작년에 잘 읽었던 책들을 쓴 작가들이 올해도 신간을 냈기에 서점에서 두권을 집어왔다.  하나는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의 김지수님이 쓴 자존가들, 다른 하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작가의 논어에 관한 책.  상담하러 가는길에 술술 잘 읽히는 자존가들을 가지고 기차를 탔다. 요즘은 SRT를 타고 선릉으로 가는데, 되게 간편하고 빨라서 좋다. 버스를 탈때는 집앞에서 기다릴 때가 많으니까, 정확한 기차가 편하다.  여튼, 왔다 갔다 하면서 전부 읽어버렸다.  자기 인생의 철학자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이어령님의 마지막 인터뷰가 있었던 부분이 좋았다.

 

- 온 마음으로 감탄하고 감사하세요 <화가 황규백>

  그럼 센스는 타고나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요, 단순히 예술만의 얘기는 아니예요. 센스가 있으면 가난해도 부유하게 살아. 센스 있는 사람은 비싼 옷으로 번드르르하게 치장 안 해. 슬쩍 걸쳐 입어도 멋이 나거든. 적게 먹어도 좋은 걸 찾아 먹지. 내 대표작인 손수건 시리즈도 공부를 하면 더 잘 그릴 수 있어요. 하지만 더 잘 그리면 못 그리게 돼.  서툴게 그려야 멋이죠,  그걸 감지하는게 센스야.  감각이죠.  

 아름다움을 향한 그 감각의 문은, 대관절 언제 어떻게 열립니까?

  온 마음으로 감탄하고 감사할 때죠,  좋은 음식 먹으면 "와! 너무 좋다" 그러잖아요.  인간이 만든 건데도 신의 선물 같거든, 친구랑 바다 앞에 서면 "와! 너무 좋지?" 그 한마디면 된 거예요. 인생이 얼마나 좋은지, 사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무슨 어려운 설명이 더 필요해요.

- 즐겁게 일하려면 정리정돈이 필요해요 <디자이너 지춘희>

  사람을 가까이할 때 무얼 중요한 가치로 보십니까?

  진실성이요. 나는 당최 그 속을 모르겠는 사람은 불편해요. 명백한 게 좋아. 옷이든 사람이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스타일 인가요?

  나는 제일 싫어하는 게 바쁜 척하는 거예요. 일하는 거 티내면서 수선 떠는 사람이 제일 안쓰러워. 바빠도 여유 있어 보이려고 해요. 쉽지 않아요. 일단 정리가 잘 돼 있어야 해요. 오거나이즈가 중요하죠. 수백 가지 액서세리에 1밀리 디테일에도 달라지는 게 패션쇼고 옷이에요. 정리가 안 돼 있으면 카오스죠, 그래서 내가 직원들에게 하는 잔소리도 늘 "정리해라"예요. 

나른한 말투로 여유 있게 상대의 긴장을 풀어 주는 지춘희식 애티튜드의 비결은 정리정돈이었다.

 불안해서 설치는 사람을 보면 대개 자기 정리가 안 돼 있어요. 여럿이 협력해서 일하려면 순서를 정하고, 이것저것 조합해서 순식간에 디렉션을 내려야 해요, 평소 훈련이 돼 있으면 연결이 부드럽죠. 막힘이 없어야 즐겁잖아요. 

-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가톨릭 신부 최대환>

얼어붙은 겨울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우정의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시대에는 분노도 많고 긴장도 심해요. 이곳저곳에서 권리가 충돌하고 욕망이 들끓죠. 하지만 혼란의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은 막연한 기대와는 다릅니다. 바람을 잘 정화하고 조형해야 희망이 되죠. 그리고 그것을 반드시 지켜 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나치 치하에서도 살아남은 유대인 시인 힐데 도민 여사를 만난 일이 있어요. '희망의 시인'으로 유명한 분이지요.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총명한 목소리로 그러시더군요. 장미 꽃을 가꾸듯 희망을 지키라고, 희망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 안에 조용히 기적을 간직한 사람이라고요. 

 최대한을 만나고 나서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를 자주 들었다. "Starry, starry night" 으로 시작해서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로 이어지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 고인다. 만났다 헤어졌다 , 늘 새로운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게 인생이라면, 여러분도 사랑하는 이에게 부디 너무 늦지 않게 이 말을 전할 수 있기를. "이제 나는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는 것을."

-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업어 준다는 건 존재의 무게를 다 받아준다는 건데, 서양인에게 익숙지 않는 경험이군요.

 그들은 아이들에를 요람에서 키우니까. 태어나자마자 존재를 분리하지요. 땅에 놓으면 쥐들이 공격해서 아이를 천장에 매달아 두기도 헀어요. 우리나라는 무조건 포대기로 싸서 둘러업잖아. 어미등에 붙어 커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천성이 착해요. 서양은 분리가 트라우마가 돼서 독립적인 만큼 공격적이거든. 우리 전통 육아는 얼마나 슬기로워요. 오줌똥도 "쉬쉬~", "끙아끙아~"하면서 어린애 말로 다 유도를 했거든. 

요즘 "탄생" 이야기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뵐 때 '마지막 파는 우물은 죽음' 이라고 하셨는데요.

 죽음을 앞두면 죽는 얘기를 써야잖아? 나는 반대를 써요. 왜냐.. 죽음은 체험할 수가 없으니까. 사형수도 예외가 없어요, 죽음 근처까지만 가지. 죽음을 모르니 말한 사람이 없어요, 임사체험도 살아 돌아온 얘기죠, 살아 있으면 죽음이 아니거든.  가령 이런거예요, 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어,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를 나오면 죽어요.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보지요.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에요,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는 없는 거라. 그래서 나는 다른 데서 힌트를 찾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탄생 자체를 비극으로 보는 젊언이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서 안 태어나는게 행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 빨리 사라지는게 낫겠다, 이렇게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건 무의미해, 제일 쉬운게 부정이에요, 긍정이 어렵죠, 

 나야말로 젊을 때 저항의 문학이다, 우상의 파괴다, 해서 부수고 무너뜨리는 데 힘을 썼어요, 그렇게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숨을 쉬고 구름을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미래를 낙관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밀물의 시대에서 썰물의 시대로 가고 있어요. 이 시대가 좋든 싫든, 한국인은 지금 대단히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고 있지요. 만조라고 할까요, 그런데 역사는 썰물과 밀물을 반복해요. 세계는 지금 썰물 때지만, 썰물이라고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갯벌이 생기니까요. 

요즘 따님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까닭도 따님과 관련이 있는지요?

 우습지만 성경에는 나중 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내 딸이 그랬어요, 그 애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어요. "지금 나가면 3개월, 치료받으면 6개월" 선고를 듣고도 태연하니까, 오히려 의사가 놀라서 김이 빠졌어요.

 민아가 네 살 때였어요. 아내가 임신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대천해수욕장 앞에 묵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달느 천막에 가서 문학청년들과 신나게 떠들었지. 그러다 민아가 깨서 컴컴한 바다에 나가 울면서 아빠를 찾은 거야. 어린 애가 겁에 질려서..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우리 애는 기억도 안난다지만,

 그랬던 아이가 혼자 미국에 가서 무척 고생을 했어요., 그 어렵다는 법대를 조기 졸업하고 외롭게 애 키울 때, 그날 그 바닷가에서처럼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울 때, 그때 나의 대역을 누군가 해 줬어요, 그 분이 하나님이야, 내가 못 해 준 걸 신이 해줬으니 내가 갚아야겠다.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 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도 ㅎ마께 밝아진 거지.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좇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