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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많은 이상주의자 :)
180726 본문
여행은 새롭고 벅차고 행복했지만,
다녀오고 나서 현실을 다시 마주했을때,
행복하지만 허탈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어디에 속한 내가 진짜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런것들이 조금 헛헛하게 만든다
가만 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 지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둥 기분 전환이 되는건 사실이니까
두서 없지만 이번 발리에서 좋았던 순간들을 꼽자면,
1. Mountian batur hiking 할 뻔(!) 했던 일,
어떤 사람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이다. 길리와 스미냑에서의 초반을 제외하고 우리와 함께 했던 드라이버 안과 새벽 3시에 만나 hiking을 하기로 했을 때도 나는 안을 믿지 못해서 혼자 괜찮을까 과연 괜찮을까 했었다.
이런 걱정을 안고 해 뜨는 것을 보기 위해 새벽 4시쯤 batur 주차장에 도착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해를 보기 위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심했지만, 터무니 없이 비싼 guide 비용에 안이 guide무리와 싸우기 시작했다. 가이드 무리?들이 차를 치고 소리를 질렀고, 난 깜깜한 밤에 무서워서 그냥 비싸도 돈 내버리자고 했지만, 안이 그 사람들이 폭력적인 것을 보니 나와 둘만 보내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hiking을 포기하기로 했다. 미안했던지, 안은 다른 해변으로 차를 몰아 sunrise를 보여주고 커피도 산다고 했다. 그에게는 작지 않은 돈으로 나를 위한 아침과 커피를 사주었다. Batur 하이킹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지만 아쉬운만큼 또 안이 보여준 시간은 사람냄새나는 인도네시아였다. 그래서 또 그것대로 좋았다
2. 길리 여행
길리에서의 시간은 내게 그 어떤 여행의 순간들보다 행복했다. 하루종일 해뜨는 것을 보고, 아침 자전거를 타고 수영하고 책을 읽으면서, 지난 6개월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움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왔다. 도착한 순간부터 이섬은 내게 이 순간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매순간 ‘지금이 그립겠지 이 감정을 잊지 않도록 품어야하는데, 진심으로 행복하다.’ 그러면서 좋은 것을 공유 할 사람이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그부분이 너무 아쉽네. 섬에서 순간이 아쉬워질 때면 그가 생각 났다. 바람, 하늘, 바다, 공기, 햇살, 냄새 모든 것들이 완벽 순간에는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작은 부재는 더 크게 느껴졌다. 어디에선가 너도 좋은 것을 보고 내 생각을 하길 바랬다.
여유가 생기니 예전처럼 행복해졌다. 길리에서 들었던 요가 클래스 때문인지, 스스로 바뀌지 않을 어떤 마음에 집착했던것을 내려 놓은 기분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괜찮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다시 행복해지고 여유로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소용없지만 내가 그랬었단 얘기 정도는 전하고 싶어져서 그곳에서 한국에 도착할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엽서를 썼다
그리고 이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찾아와야지
3. 생각지도 못한 롬복 여행
길리에서 나오는 날, 파고가 높아 배가 뜰수 없다고 했다. 작은 패스트 보트는 뜰 수 없지만, 옆?섬에 롬복으러 가서 큰 페리를 타면 시간이 꽤 걸리지만 발리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만 불안해하는 타입이라 걱정이 많아졌다. 작은 배를 타고 롬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또 롬복에서 2 시간동안 차를 타고 이동, 그 이후에 우리나라 이름이 적힌 중고 페리를 타고 6시간동안 발리로 둥둥 -
나와 내 친구 유럽 남자3명과 여자5명, 중국인 4명 이렇게 한 팀이 되어서 길리에서 출발했다. 유럽애들을 포함한 모든 애들이 나보다 한참은 어려보였다. 백인들끼리의 유대감이 뭔지 동양의 섬에서도 편을가르며 자기들끼리 되도 않는 영어로 얘기를 했는데, 내가 훨 잘할거 같구만. 하지만 자존심에 끼지 않았다 여튼, 편은 편이고 우리는 팀처럼 움직였다. 그중에 가장 듬직해보이는 아재?한명이 리더로 배편/ 차편/페리 표를 미션처럼 각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구해왔다. 첫 미션인 롬복으로 가는 작은 배는 파도에 전복되지 않을까 무서울 정도로 작았다. 이렇게 작은배에 이렇게 많은 사람과 짐이 탈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짐과 사람을 실었다. 파도에 전복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항구에 도착하니 짐을 멋대로 옮기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짐도 그 중 하나였다. 아저씨들과 실랑이를 한다고 시간을 조금 지체했다. 두번째 차로 갈아탔을때는 롬복 북쪽에서 남쪽까지 횡단하는 길이었다. 창밖에 롬복 풍경을 보며 발리, 길리와 많이 다르구나 하였다. 롬복은 이슬람교가 더 많았고 좀 덜 깨끗했다. 마지막으로 롬복에서 페리타는 항구에 도착했다. 짐을 항구 아래 계단에 둬도 괜찮다하여 들고 다니려는 유럽애들에게 힘들까봐 말해줬더니 영어를 못하는건지 제대로 못알아 듣고 싶어하길래(롬복에 대한 불신 때문인듯하다) 뭐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항구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래되어 보이는 과일이나 음식을 팔고 있었다. 짧은 영어로 외국인들한테 다가가서 팔고 있었는데, 자꾸와서 그러니 나중에는 짜증을 내는 “유럽”애들도 있었는데, 그 조롱하는 말투와 표정은 정말이지 나를 화나게 만들정도 였다. Arrogant 한 느낌을 어디서도 받기 힘들었는데, 아 정말 무식한 애들이란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잡상인들의 라면도 사고 친근하게 굴었다. 우리나라가 돈이 없거나 내가 교육을 못받았다면 내게도 그랬겠지 싶어서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너무 화가났다
페리를 타고 나서는 그들과 헤어졌기 때문에 더이상 신경을 거스르는 것이 없었다. 길었고, 중간중간 짜증 나는 일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함에 신났고, 마지막에 페리에서의 화산과 석양은 하루의 짜증을 씻어버릴만큼 장관이었다. 같은 순간을 보고 있었던 미국친구와의 대화도 생각나고, 이런 날도 특별하지 싶었다
4. 빠당빠당 비치와 옴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