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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많은 이상주의자 :)
190224 본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것이 좋다 에서
- 종이 울리고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8이라는 숫자가 적힌 '빤스'를 입고 다시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라야 한다. 새도복싱을 시작하는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처럼 하얀 눈이 쏟아진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은 말했다. "내리는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면, 모래시계 바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속절없이 쏟아지는 시간의 눈을 맞으며, 부랴부랴 새해의 계획이라도 세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 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 먼저 설거지의 존재론. 설거지는 과정입니다. 인생이 한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듯, 설거지 역시 긴 취식 과정의 일부입니다. 요리의 시작은 쌀을 밥솥에 안치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요리의 시작은 장보기입니다. 식사의 끝은 디저트일까요? 아닙니다. 요리의 끝은 설거지입니다. 설거지의 끝은 식기를 헹구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싱크대의 물기를 닦고, 가스레인지의 얼룩을 닦고, 도마를 세워놓고, 수세미를 잘 마를 수 있는 위치에 놓을 때 비로소 설거지는 끝납니다. 마찬가지 이야기를 화장에 대해서도 할 수 있겠지요. 화장이란, 기초화장을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화장품을 바를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한 피부를 유지하고 자신의 피부톤과 어울리는 화장품을 갖추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화장은 립스틱을 바르고 집을 나설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귀가해서 폼 클렌저로 세안할 때야 비로소 끝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결과만을 강조하곤 합니다. 적절한 상대를 소개시켜준 적도 없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게적인 학자가 되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설거지의 윤리학. 설거지는 밥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게 대체로 합리적입니다. 취식은 공동의 프로젝트입니다. 배우자가 요리를 만들었는데, 설거지는 하지 않고 엎드려서 팔만대장경을 필사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귀여운 미남도 그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혹자의 삶이 지나치게 고생스럽다면, 누군가 설거지를 안했기 떄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19세기 유한계급 양반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남긴 설거지를 하느라 이토록 분주한 것이 아닐까요? 후대의 사람들이 자칫 설거지만 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각 세대는 자신의 설거지를 제대로 해야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세대간의 정의 입니다.
설거지의 인간론. 결혼은 연애의 업보이고, 자식은 부모의 업보이며, 설거지는 취식의 업보입니다. 설거짓거리는 취식의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얼마나 깔끔하게 혹은 게걸스럽게 먹었느냐가 고스란히 설거짓거리에 반영됩니다. 사실 인간 자체가 설거짓거리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의 육체는 땀과 침과 피지를 분비하고, 각질과 군살을 만들어냅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타성, 나쁜 습관, 부질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면에서 성장과 노화란 곧 썩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설거지 없이 깔끔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에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인 '일신우일신'이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고대 중국의 탕 임금의 목욕통에 새겨져 있던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본뜻은 일단 잘 씻으라는 것, 즉 스스로의 설거지에 게으르지 말라는 뜻이 아니였을까요? 잘 씻고 잘 살기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의 설거짓거리고 전락하게 될 테니까.
끝으로 가장 중요한 한마디, 모든 설거지는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설거지
- 어떤 폭력적인 경험은 때로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를 테면 식민지배를 받아들여야 했던 한국이 그렇다. 제국주의에 침탈당한 한 조공국의 황혼. 난입한 제국주의자들은 말했다. 너희는 스스로 현대적인 공적 질서를 창출해서 살아갈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가 대신 지배해주겠다.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하여 한국인들은 질주를 시작한다. 추구할 공동체의 헌법적 가치를 새삼 숙고할 여유는 없다. 원초적 폭력이 한국인에게 떨치기 어려운 공통의 숙제를 부여했으므로, 한국인은 그 숙제를 하며 현대사를 소진해야한다. 세밀화를 배우고, 석판화를 수집하고, 시집을 천천히 고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침탈과 모욕을 피하여 달리기 시작한 그들은 정부 수립을 거쳐, 동족상잔의 전쟁을 넘어, 현대 국가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멈출 수 없다. 마침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떄까지. 그것이 결국 무엇을 위한 질주이든, 그들은 일단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서 질주해야만 한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중명해야할 것들이 남아있다. 스스로를 갱신하여 현대적인 공공의 삶을 구현할 수 없는 쥐떼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기 전과는 더 이상 같을 수 없다.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 오늘날 자기계발서들은 당신을 위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삶이 힘들죠? 이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멈춰서 보세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가기 전에 잠깐 스치는 게 삶이죠. 마음을 고쳐먹으세요. 내려놓으세요. 집착을 버리세요. 세상 탓을 하지 마세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해요. 옳은 것보다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해요.
물론, 이러한 조언도 필요하다. 특히 사랑을 하고 있는데도 사랑이 하고 싶을 때, 밥을 먹는데도 밥이 먹고 싶을 때, 살고 있는데도 살고 싶을 때, 자기게발서의 조언들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상적인 문제의 뿌리는 보통 다른 곳에 있다. "삶이 힘들어"라는 말은 대게 "취직을 하고, 괴롭히는 직장 상사가 없고, 빚이 없고, 일주일에 4일만 일하고, 봄가을에는 여행을 다니고 싶어"의 준말이다. 너무 길어서 평소에는 "삶이 힘들어"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 이에게 자기계발서의 달콤한 위로를 선물하는 것은 욕조가 없는 이에게 입욕제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
정신 승리에만 열중하다보면, 객관적인 현실이 슬그머니 다가와 백허그를 한다. 이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 잠시 멈춰서서 바닥난 은행잔고를 바라보세요. 정신 승리를 한다고 해서, 길 잃은 지폐가 방문을 두들기며, '여보세요,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당신 지갑 속에 하룻밤만 재워주세요'라고 하겠어요? 이불 속에서 오늘은 금요일이라고 10번을 외쳐도, 이불 밖의 현실은 여전히 월요일이죠. 그렇다면 이제 객관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정부가 애써 집계하고 있는 '과학적인' 통계 수치들을 바라보세요. 인구 통계, 실업 통계, 출산율 통계, 자살자 통계, 가계부채 통계, 최저임금 통계 등등. <이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